조선 백자 최고의 꽃 달항아리, 재료는 양구 백토로 만들어져

■ 프로그램 : 춘천 BBS ‘아침세상 강원’  

   (춘천 100.1, 강릉 104.3, 속초 93.5, 양양 97.1MHz)

■ 방송일시 : 2024년 9월 5일(목) 오전 8시 30분 

■ 출연 : 정두섭 양구백자박물관장  

■ 진행 : 이석종 기자

양구백자박물관
양구백자박물관

■ 이석종 기자 :  아침세상강원에서는 조선 백자의 시원지인 양구가 어떻게 조선 백자의 시원지가 됐고, 또 이후에 변천 과정과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서 연속해서 알아보는 시간 갖고 있습니다.  오늘도 양구백자박물관 정두섭 관장과 관련 이야기 계속해서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두섭 관장님 안녕하세요?

■ 정두섭 관장 : 네 안녕하세요.

■ 이석종 기자 : 저희가 이제 어제 이 시간에 나눈 이야기가요. 이제 양구에서 언제까지 상()품의 백자가 생산이 됐고, 또 언제까지 생활자기가 생산이 되다가 그 맥이 끊긴 시점까지 저희가 이야기를 나눠본 것 같은데요. 오늘도 계속해서 또 질문을 드릴게요.   이번에는 조선시대 때 양구에서 생산된 백자들이 어떤 종류가 있는지 그걸 좀 여쭤보고 싶은데, 조선시대 때 그럼 양구에서 생산된 백자들은 어떤 종류들이었습니까?

■ 정두섭 관장 : 일단 생활용기이겠죠. 생활용기고 예를 들어서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발이라든지 병이라든지 항아리라든지 이런 것들이 이제 주류를 이루고, 그리고 우리가 이제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제기로 얘기를 하는 제기 굽이 높은 그런 접시들 이런 것들도 좀 보이고요. 그리고 반지 또...

■ 이석종 기자 : 소품이네요?

■ 정두섭 관장 : 네, 또 강판...

■ 이석종 기자 : 강판이요?

■ 정두섭 관장 : 이렇게 채소를 이렇게...

■ 이석종 기자 : 예, 그러니까 도자기로 이게 제작이 가능해요?

■ 정두섭 관장 : 네,  근데 이제 조질이죠. 이렇게 굵은 모래를 유약 위에 이렇게 깔아서 그 돌에다 이제 가는 그런 형태, 뭐 그런 것들... 거의 생활에 필요하는 흙으로 빚을 수 있는 것들은 다 만들지 않았을까 확인만 안 되었을 뿐이지 그래서 필요한 것들을 어찌 보면 불에 구워낸다는 어려움이 있을 뿐이지 손으로 빚을 수 있는 건 웬만한 건 다 빚을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어떤 그런 것들을 꽤 많이 이것저것 만들어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 생각을 합니다.

조선 백자의 꽃 달항아리/사진제공=국립춘천박물관
조선 백자의 꽃 달항아리/사진제공=국립춘천박물관

■ 이석종 기자 : 그리고 이제 최근에 많이 광고나 이런 것들을 보면 달항아리가 굉장히 많은데요. 조선 백자의 대표하면 역시 이제 달항아리인데 양구에서도 달항아리가 생산이 됐었을까요? 어땠을까요?

■ 정두섭 관장 : 달항아리는 양구에서 제작이 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다만 달항아리는 이제 특정 지역의 특정 인물들을 위해서 이제 만들어진거죠...

■ 이석종 기자 : 그래요. 특정 계층을 위해서...

■ 정두섭 관장 : 그렇죠. 근데 달항아리 너도 나도 너무나 좋아하죠. 아무리 싸야 몇십억이고 비싼 거는 몇 백 억을 호가하고...

■ 이석종 기자 : 지금 현재 가치가요?

■ 정두섭 관장 :  그렇죠... 우리나라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게 많고, 그래서 이 달항아리에 대한 관심들이 엄청나게 높아요. 근데 이게 좀 약간 다른 얘기일 수 있겠으나 이 달항아리가 주로 제작이 된 곳은 경기도 광주의 금사리하고 분원리 일대에서 주로 제작이 돼요.  근데 현대의 과학자가 경기도 광주의 금사리와 분원리 일대의 그 백자의 편들을 분석을 해보니 양구 백토하고 일치하는 거죠.

■ 이석종 기자 : 그래요? 재료는 역시 양구 백토군요....

■ 정두섭 관장 : 예, 그렇죠.. 그래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조선 백자의 최고의 꽃이라고 이야기하는 달항아리도 양구백토로 제작이 되었다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는거죠...

■ 이석종 기자 :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달항아리가 조선 백자의 대표처럼 이렇게 인식이 되게 된 걸까요? 이게 최근에 광고 이런 것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 용기도 많이 나오고요...

■ 정두섭 관장 : 일단은 사이즈가 커요. 40cm 이상의 둥근 그러니까 달을 닮아서 달항아리라고 얘기를 하는 거고, 원래 우리가 유물을 붙이는 명칭으로 하면 백자대호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이제 원래는 맞고요. 크기가 커서 2개를 이어 붙입니다.

그러니까 두 개를 이어 붙여서 만드는데... 달항아리는 무조건 2개를 이어붙이고...

■ 이석종 기자 : 한 번에 제작하는 게 아니라요?

■ 정두섭 관장 : 한 번에 이제 제작하기가, 그 당시에는 이제 물레도 좋지 않고 흙도 사실은 그 사이즈를 버텨주기도 쉽지 않고, 그러니까 제작하기도 어렵고 불에서도 구워내기 어렵고, 그리고 또 만들어내고 나서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일반 대중들이 또는 일반 관공서에서 쉽게 누구나 이렇게 쓸 수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 남아 있는 것들이 이제 많지 않다 보니 이제 더 높이 평가를 받고 또 그게 아주 깔끔하게 정형화되어 있으면 사실 아주 이쁜 거는 금방 봤을 때는 이쁠 수 있으나 자꾸 질리죠.

그런데 이제 얘네들은 똑같이 원으로 되어 있지만 기울기도 하고 접합 부위가 보이기도 하고 그래요. 일그러지기도 하고 또 불에 의해서 색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그냥 얼핏 보면 동그란 항아리지만 이렇게 돌려보면 그 모든 360도의 어떤 각 시선들이 어떤 새로운 맛들을 주는 그런 아주 묘미들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회하고 지금 사회에서 이제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현대사회하고 맞아떨어지는 정반대의 그런 미학들이 지금의 사람들한테 이제 좋은 감정을 심어주고 있는거죠...

■ 이석종 기자 : 예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화장품 용기 있지 않습니까? 포장 용기로다 이렇게 많이 이렇게 활용이 되더라고요. 그 모양이...  예예 알겠습니다. 아무튼 이제 양구 자기 같은 경우에는 70년대 중반까지 생산이 되다가 이제 그 맥이 이제 끊겼고요. 그 이후에 이제 양구 자기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이렇게 점점점점 잊혀갔는데, 지금의 양구 백자박물관이 이제 들어서면서 다시 양구 자기에 대한 관심이 쏠리게 된 것 같은데요. 이 양구백자박물관은 언제 왜 어떤 계기로다가 건립이 됐고 언제쯤 이게 설립이 됐습니까? 

■ 정두섭 관장 :  돌아가신 임경순 군수님 시절에 이제 친하게 지내시던 고향 출신의 기자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이제 평생 모아왔던 양구 백자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양구 백자를 이제 양구에 기증을 하기로 했고, 그 연유로 인해서 박물관이 이제 만들어지게 된 거죠....

■ 이석종 기자 : 그러면 양구백자박물관에는 현재 전시돼 있는 전시품은 몇 점이나 됩니까?

■ 정두섭 관장 : 지금은 한 2700여 점 정도요... 근데 개관할 당시에는 이제 몇십여 점이 안 됐었고요. 그 이후에 이제 꾸준히 이 지역의 유물들을 수집을 했고 또는 양구의 흙으로 만든 현대 작가의 작품들도 이제 수집을 하게 된 거죠.

■ 이석종 기자 : 예.. 그럼 전시품 중에 국보급이나 보물급의 작품도 있습니까?

■ 정두섭 관장 : 그 급(국보.보물)은 없지만 저희가 이제 조만간 9월 12일에서 12월 8일까지 리움에서 기증한 국보가 있는데 천지현황명의 백자가 있어요.. 천지현황이라고 새겨져 있는 백자 발 세트인데, 이 하늘 천명의 백자 와 동일한 백자가 저희 박물관에도 소장이 돼 있습니다.  물론 이제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수준의 유물들도 이제 저희 박물관에 있다. 하지만 이제 보물이나 국보처럼 그렇게 아주 좋은 유물들은 아직은 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 이석종 기자 : 그럼 수장고에는 몇 점이나 있습니까?

■ 정두섭 관장 : 수장고에 정확하게는 파악이 안됐지만, 수장고에 있는 것들은 제작지가 확실한 지역의 도자기들, 예를 들어서 광주 분원 그 다음에 문경 고창 그 다음에 북한의 회령 이렇게 이제 제작지가 확실한 지역의 도자기들을 저희가 수집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유는 물론 이제 지역에 지방에 있는 백자들을 비교해서 전시할 수 있는 그런 것들로도 이제 활용이 가능하겠지만, 저희는 이제 백토에 대해서 아주 일찌감치 이제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전 지역의 백토 원석들을 수집을 하고 있는데 그 원토가 북한의 원토들도 저희 수집 대상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언젠가 남북의 원료를 합성을 해서 통일 백토를 만들고 그 통일 백토를 이용해서 남북의 도예가가 통일 백자를 만들자라는 것이 저희 이제 큰 프로젝트 중에 하나인데, 그래서 그 시기에 뭔가 좀 크게 좀 해보자라는 의미에서 북한의 도기, 우리나라 각 지역에 어떤 그런 자기들도 수집을 하고 있는 겁니다.

■ 이석종 기자 : 관장님은 양구 백자박물관에서 설립되자마자 근무를 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양구백자박물관에서는 몇 분 정도가 근무를 하고 계시고 주로 어떤 일들을 하세요? 백자연구소도 있던데...

■ 정두섭 관장 : 저희가 이제 박물관의 어떤 기본적인 임무들은 사실은 이제 연구 전시 체험으로 압축해서 이제 얘기를 할 수가 있는데요. 그런 일들을 일단은 직원들이 이제 수행을 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관리하고 있는 땅들이 꽤 넓어요. 여기가 한 5만 평 정도 되거든요. 저희 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건물의 평수만 해도 한 2천 평이 넘어요. 되게 큰 규모구요. 그러니까 이제 제초 작업을 해결하기도 사실 쉽지 않죠.  근데 어찌 됐든 이제 그런 일들을 이제 업무 분장을 해서 운영을 하게 되어 있고요.  그래서 시설도 저희가 계속 직접 토목 건축에 관련된 일들도 좀 하고 있고 그 다음에 꾸준히 전시를 유치해서 전시 진행하고 있고,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이제 저희 박물관이 가장 잘 되고 있는 거는, 체험하고 교육하고 이런 것들이 좀 가장 잘 되고 있다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근자에 들어서는 교육을 좀 다른 분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거는, 크게 이제 교육은 이제 세 가지가 있어요.   매일 와서 그날그날 경험할 수 있는 일일 체험이 있고, 그 다음에 이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도예 강좌, 그리고 이제 또 하나는 백자 또는 도자 문화를 좀 영역은 다르지만 일반인들이 좀 쉽게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을 하다가, 백자 악기를 만들자...

■ 이석종 기자 : 백자 악기요...

■ 정두섭 관장 : 네, 그래서 그 백자 악기를 주민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단을 좀 만들자. 그런 취지에서 이제 백자소리라는 공연단을 만들었고요.  

이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이제 결국에는 북이나 장구더라고요, 전통 악기들이... 그래서 모든 북 교육을 이제 진행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모든 북을 이제 백자로 만드는 거죠.

■ 이석종 기자 : 그게 가능합니까?

■ 정두섭 관장 : 그럼요.. 이제 나무에서 나오는 소리하고 이 자기에서 나오는 소리하고 좀 달라요.  나무는 좀 소리를 먹고 백자는 이제 많이 튕겨내고 뱉아내고 그래서 하여간 그 백자소리라는 공연단을 만들어서 지금 교육과 또 기회가 나면 이제 공연도 좀 진행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제 또 하나는 도자 주얼리 교육을 또 진행을 하고 있는데요. 이제 시골에서는 장신구 만든 주민들의 소득이 사실 제한적이잖아요. 농업 빼고는... 더더군다나 젊은 사람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와서 뭔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죠. 그래서 그런 것을 고민을 하다가 그러면 우리 이 백자를 가지고 뭘 좀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실 이제 백자 유약이나 이런 것들은 조금만 이용을 해도 그걸 가지고 이제 낼 수 있는 효과들은 크거든요. 그래서 양구 백토와 식물의 재를 7대 3으로 섞어서 구슬을 만들어서 구우면 그게 이렇게 동그란 도자 구슬이 돼요.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반지를 만든다든지 귀걸이를 만든다든지 이런 이런 걸로부터 가지고 이제 확장을 해서 주민들 교육을 하고, 그 다음에 그게 단순한 취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품으로 연결이 돼서 공정관광의 관광 상품으로 써먹든지, 아니면 이제 고향사랑 기부제에 답례품으로 이제 사용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도자 주얼리 교육도 이제 저희가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석종 기자 : 주얼리 교육이 관심을 끄는데요... 그 주얼리 교육을 받고 나서 지금 그러면 시판 양산 단계까지 가는 겁니까?

■ 정두섭 관장 : 양산까지는 아직은 아니고요. 양산은 이제 기계인 거고요. 저희는 이제 생산 생산도 하고 지금 마을 기업도 지금 추진을 좀 하고 있고요.  그리고 얼마 전에 이제 공모전에서도 실적들을 좀 내셨고, 그리고 교육생이 다시 교육자가 돼서 교육을 진행을 하기도 있고, 그래서 일단은 좀 선순환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제 조금 더 활성화가 돼서 저희가 최초에 생각했던 것을 이뤄 나가려고 합니다.

■ 이석종 기자 : 그러면 지금 전시 판매장이 있겠네요?

■ 정두섭 관장 : 판매장까지는 아직은 그렇고...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고향사랑 기부제 답례품으로도 선정이 돼 있습니다.

■ 이석종 기자 : 예 그렇군요. 그리고 양구백자박물관이 이제 2006년에 설립이 됐으면 거의 18년이 됐으니까 그동안에 양구백자박물관에서 자기 관련 전시회를 굉장히 많이 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전시를 열었습니까?

■ 정두섭 관장 : 일단 이제 기억에 남는 거는 저희가 도자역사문화실이라고 얼마 전에 증축한 공간이 있어요.  근데 그 공간에서 지금 상설전처럼 진행이 되고 있는 건데, 새로 짓는 건물에 좀 의미 있는 일들을 좀 해야겠다... 저희는 현재 양구백토를 외부로 반출을 하지 않거든요. 아주 특수한 이유가 아닌 이후에는.... 그래서 양구 백토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도예가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좀 의미 있는 일들을 하자. 그래서 대한민국에 있는 꽤 많은 그런 사람들이 양구 백토가 어떤 흙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좀 해결을 시켜주고, 또 저희도 의미 있는 일을 좀 하자 그래서 대한민국에 천 명의 도예가를 섭외를 해서 양구 백토를 3kg씩 보내드리고 그 흙으로 만들어진 천 점의 작품을, 지금 이제 천개의 빛이 되다라는 전시실에서 하고 있는 게 좀 하나 있고요.

그리고 이제 또 하나는 아까 살짝 말씀드리긴 했지만, 남북의 흙을 이용해서 합토를 해서 남북의 도예가가 만든 통일백자를 만드는 게, 이제 제가 하고 싶은 큰 프로젝트 중에 하나인데 이게 또 쉽지가 않잖아요. 그런데 이런 거죠. 북한의 도예가가 남한의 흙으로 만든 통일백자, 남한의 도예가가 북한의 흙으로 만든 통일백자, 물론 이제 남북의 흙을 합토를 해서 남북의 도예가가 만든 통일백자가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이제 그런 이제 앞선 그런 것들을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이제 어떤 분의 소개로 탈북 도예가를 한분을 이제 섭외가 됐어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도예가인데... 그 회령 출신의 도예가가 양구백토를 이용해서 만든 통일백자 전시회를 이제 작년에 진행을 했었죠.

■ 이석종 기자 : 그럼 그분이 이제 탈북하시면서 회령의 갖고 오신 거예요?

■ 정두섭 관장 : 아니죠.. 그러니까 탈북 도예가가 양구 백토로...

■ 이석종 기자 : 사람이 만나는... 사람과 양구 백토가 만난다. ...  그렇군요. 예 알겠습니다. 오늘도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요. 또 남은 이야기들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양구백자박물관 정두섭 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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