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 은해사 원터 추정지에서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유지됐던 사찰 건물지와 당시 존재했던 암자의 이름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됐습니다. 

영천 은해사 원터(구지舊址)는 신라 헌덕왕 원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은해사의 전신 ‘해안사(海眼寺)’ 터로 알려진 곳입니다. 

불교문화유산연구소가 지난 7월 시행한 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조선시대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석축 등이 확인되었으며, 범자문 막새·평기와·분청사기·도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출토유물 가운데 조선 세종 29년(1447년) 현재 조사지역에 ‘용암’이라는 암자가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正統十二年戊辰三月日公山下湧庵(정통12년 무진3월일 공산하 용암’이라는 명문 기와가 확인됐습니다.

조사단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전기 ‘해안사’의 부속 암자인 ‘용암’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자료로써, 은해사의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로 판단했습니다. 

또한, 정밀발굴조사와 함께 은해사 구지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조사구역 주변에 대한 학술조사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번 시굴조사는 은해사 전신인 ‘해안사’의 흔적을 찾아 은해사 역사성 뿐만 아니라 팔공산 불교유적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팔공산은해사사적비'에 따르면, 1546년 천교화상이 해안평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해안사를 은해사(銀海寺)로 개명했습니다.

국가유산청과 불교문화유산연구소는 2015년 전국 폐사지 현황조사에서 이곳에 다량의 유물과 석축을 확인하고 대규모 산지가람이 잔존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올해 중요폐사지로 선정, 시굴조사를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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