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발생한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 시작한지 오늘로 꼭 1년이 지났다.  1년만에 여야 정치권은 도쿄전력의 오염처리수 방류를 놓고 또다시 날선 공방을 그대로 재연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방류 1년이 지났지만 오염수로 인해 바다가 오염됐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야당의 근거 없는 괴담 선동으로 우리 어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해역까지 오는데는 4,5년에서 최대 10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제 1년이 지난 상황에서 야당에 대해 괴담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8.15 광복절에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대한민국 건국 시점과 친일 인사에 대한 발언 등 역사 인식을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정부의 광복절 행사가 반쪽 짜리로 치러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그런가하면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영방송 이사 교체 등을 둘러싸고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가 본색을 드러냈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권 교체때마다 되풀이돼온 공영방송 장악 논란이 이번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방송사 내부 구성원들간의 갈등과 반목, 노사 대립, 노노 갈등이 심화되고 방송사의 파행 운영, 불공정 보도 논란 등이 빚어지면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피로감만 더욱 커질 것이다.

이처럼 사생결단식의 여야 대치는 내편은 선이고 상대편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보고 싶은것만 보고 믿고 싶은것만 믿는 이들을 더욱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정치권의 극한 대치와 혐오, 양극단의 정치 문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야 모두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우리 편이 아니면 찍어내고 배제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같은 진영에서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으면 내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기 몸집을 키우는 플러스 정치보다는 말 안들으면 끼워주지 않는 이른바 마이너스 정치가 득세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느 한편에 서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느낄 경우 재빨리 어디라도 줄을 서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 모든 문제에 대해 똑 떨어지는 해답을 강요하고 잘 모른다고 하거나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을 퍼붓는다면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자율적인 의견 개진이 활발히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1960년대부터 30여년간 세계 30여개국에 선원을 열어 한국 불교 세계화를 이끌었던 숭산스님은 스님을 찾아온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본래 '나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 몸과 내 마음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대답했다. 

자기 소신이 확실하지 않고 의사 표현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유부단하다, 회색인간이다, 기회주의자다 등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성급한 규정짓기와 결론 맺기는 여러 오류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모호함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풍성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할뿐 아니라 여러 갈래의 질문도 쏟아낼 수 있고 뭔가 획기적인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문화와 예술의 발전은 모호함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여러 해석과 분석을 낳는 예술적 표현과 기법이 더욱 깊이있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정답은 없다고들 많은 이들은 말한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그 답은 각양각색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답을 찾는 일보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해 끝으로 이런 답을 남겨본다.  “오직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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