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우진 선수와 임시현 선수. 두 사람은 이번 대회 각각 개인과 남녀 단체까지 3관왕에 올랐다.
파리 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우진 선수와 임시현 선수. 두 사람은 이번 대회 각각 개인과 남녀 단체까지 3관왕에 올랐다.

 

 

100년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이 끝났다. 우리 선수단은 금메달만 따지면 2008년 베이징과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맞먹는 13개로 최고 성적을 냈고, 메달수를 따지면 총 32개로 88서울올림픽에 버금가는 성과를 냈다. 배드민턴 협회와 갈등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한 안세영 선수의 기자회견으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지만 이 또한 체육계에 더 바람직한 변화의 계기가 되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역사를 계속 써내려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올림픽 하면 필자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겼던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떠오른다. 라디오 속보를 듣던 아버님이 아나운서 첫 마디에 대번 금메달 땄나 보다.” 하시던 그해 여름날 기억이 생생하다. 첫 금메달이라니 초등학생 아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느꼈던 것 같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느껴진 건 더 어릴 적부터다. 일본에서 활약한 역도산이나 최배달 같은 이들과 박치기왕 김일 등 일본 선수와 싸워 이기는 전설적인 이야기들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현실 속의 영웅들의 이야기인데도 때론 꿈인 듯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포츠 영웅을 처음 직관한 것은 1974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에 올랐고 그 후 4전5기의 신화를 이룬 홍수환 선수다. 그해 여름 필자의 고향 인근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보이던 모습이 선하다. 근데, “왜 챔피언 주먹이 저렇게 작지?” 하는 의문이 어린 철부지에게 들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직접 인터뷰하는 영광도 가졌지만 굳이 그 말씀은 드리지 않았었다.

 

그 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LA 올림픽이 동서 양 진영에서 서로 보이콧 하는 바람에 반쪽짜리 대회로 치러진 뒤 열린 것이 1988년 서울올림픽. 대학원을 다니던 시기여서 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종합4위에 오를 정도로 엄청 선전했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여자양궁 단체가 그때부터 이번 파리 올림픽까지 10연패를 했으니까 가히 위대한 여정의 출발이었다.

 

사회생활을 본격 하면서 처음 맞이한 것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BBS불교방송은 현장에 취재기자를 보내고 특집 방송도 편성했다. 특별취재팀에 배속된 필자는 오전6시 뉴스와 오전640분 보도특집, 그리고 오후4시 스포츠 뉴스를 담당했다. 오전6시 뉴스엔 대개 우리 선수단의 활약이 첫 소식으로 나갔는데, 보도국에 컴퓨터가 배치되기 전이었던지 손글씨로 원고를 썼던 기억이 있다. 보도특집을 위해 큐시트 작성과 원고 정리, 현지에서 보내오는 리포트 녹음을 했다. 현지와 시차가 7시간이라 경기 상황 종합을 방송 직전에야 할 수 있어서 늘 시간 압박이 컸다.

 

선수 가족 인터뷰도 했다. 제일 기억나는 건 첫 금메달을 딴 사격의 여갑순 선수 어머니를 인터뷰하러 자택까지 갔던 일이다. 일제 녹음기를 들고 인터뷰해서 회사에 들어와 다음날 방송 나갈 수 있도록 꾸몄는데, 메달의 기쁨을 함께 했기에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올림픽을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다. 무리가 되었는지 병으로 3개월간 휴직을 해야 했다. 마지막 날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의 마라톤 우승 소식을 집에서 접했을 땐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못난 사람이 어디 있나 자책도 되고. 아무튼 그 때 집에까지 위문을 와줬던 동료들의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한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는 회사 차원에서 취재기자를 보내지 못하고, 통신을 통해 들어온 내용을 정리해 보도했다. 그런데 내근을 하며 금메달의 주인공 배드민턴 방수현 선수의 이름을 잘못 쓴 일이 아직도 송구스럽다. 가운데 수() 자를 주()와 비슷하게 생각해 방주현으로 잘못 썼던 거다. 뉴스가 공중파를 탔기에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필자에겐 잊지 못할 실수로 남아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해설하는 모습을 뵈면서 송구함과 더불어 용서를 마음속으로 드렸다.

 

으레 하계올림픽만 생각하다 동계올림픽까지 보면서 행복을 더했다. 우리나라의 대표 종목으로 꼽히는 쇼트트랙을 비롯해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선수, 특히 피켜스케이팅의 전설이 된 김연아 선수의 활약까지 종목도 다양해졌다. 그만큼 우리 스포츠도 발전하고 국가 위상도 높아진 것이다.

 

어떤 것이든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개막식 때 우리나라가 북한으로 잘못 소개된 부분은 못내 아쉽다. 서울올림픽이 얼마 지나지 않은 1997년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국영방송 아나운서가 대한민국 수도 평양이라고 방송했다고 해서 반신반의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된 듯해 안타깝다.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으로 국가 위상을 널리 알렸다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아닌가 해서다.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문제제기도 말꼬리를 잡기보다 말이 지향하는 곳을 보고 개선할 것들을 개선해 나가기를 바란다.

 

재삼 느끼는 것은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가 깜짝 메달을 따는 일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있었다. 그저 묵묵히 훈련에 매진한 덕분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겼을 때는 주변에 공을 돌리고 졌을 때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를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스포츠맨십을 갖춘 세계의 모범시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들이 가득한 세상이 불국토에 가까워질 것이 아니겠나. 메달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왜 올림픽을 하는가, 그 첫 화두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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