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 BBS '시그니처 타임' 인터뷰
"노래 '눈물'로 즐겁게 했으니, 이제 좋은 법으로 눈물 닦아주고 싶어"
"예술인 권리보장법 대표발의...'블랙리스트 방지' 특별법 추진"
"네팔에서 유년시절 보내...부처님 가르침 실천하기 위해 노력"

BBS불교방송 시사 프로그램 '박준상의 시그니처타임'

진행 : 박준상 사회문화부 기자 
출연 :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
방송 : 7/13(토), 7/14(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박준상(이하 박) :  22대 국회가 원 구성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나섰습니다. 특히 이번 국회에 당선된 131명의 초선 의원에 대해서 국민들은 기성의 정치와는 다른 정치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님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김재원(이하 김)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준상의 시그니처 타임에 이렇게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또 불교방송을 통해서 이렇게 저와 같은 불자 시청자님들하고 같이 만나 뵙게 돼서 너무 마음이 좋습니다. 사실 불교 방송은 제가 가수 활동을 하던 시절에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굉장히 많이 접했었는데요. 근데 이제는 이렇게 tv로도 불자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박 : 종교 방송 시청률 1위 BBS불교방송과 함께하고 계신 김재원 의원님. 예전에도 저희 사옥에 이렇게 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 : 네. 사옥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이렇게 영상 시스템을 이제 갖추고 있다는 거. 그래서 스튜디오들이 예전에는 라디오 송출을 하는 스튜디오였는데 지금은 영상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이제 다 바뀐 거죠. 그거 말고는 불교 방송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아요.

박 : 변함없는 모습으로 여러분들 곁에 있는 BBS불교방송입니다. 

김 :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박 : 좋은 이야기시죠?

김 : 그렇죠 그럼요.

박 : 예 알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의원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22대 국회 개원했습니다. 요즘에 어떻게 지내세요?

김 : 이렇게 바쁠 줄 몰랐습니다. 정말 잠이 모자랄 정도로... 거의 평균적으로 자는 시간이 지금 한 5시간에서 5시간 반 사이일 거예요. 저는 늦게 일어나야 목소리가 잘 나오는 사람이었는데요. 왜냐하면 저녁 때 일이 많으니까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면 목이... 점점 피곤하면 가라앉잖아요. 그래서 조금 늦게 일어나고 그런 편이었는데 , 요새는 꼭두 새벽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 : 정치인들은 새벽에 조간 보는 것부터 다양한 정치 일정들이 많잖아요.

김 : 그런 것도 있고요. 누군가 좀 따로 만나고 싶다 그러면 이제 비는 시간이 아침 시간이나 아니면 아예 저녁 시간 밖에 없어요. 그런 시간을 확보해야되는 그런 의미도 있고요. 하루 종일 시간이 정말 빨리 가더라고요. 

박 : 사실 국회의원 임기 4년 동안 개인 김재원이 아니라 국회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참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은데요. 그동안 국회가 쉽지 않았어요. 22대 국회 개원하고 나서 계속 원 구성 때문에 갈등도 생기고 이런 모습 보면서 좀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김 : 네. 문체위가 관리를 하고 있는 것들이 종교도 포함되거든요. 그래서 사찰 관리, 보존이라든지 또 종교 관련한 문화라든지 이런 것들이 융성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요. 또 종교 쪽에 의견을 듣는 것들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다양한 종교들이 자리를 잘 잡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또 좋은 문화적 역할을 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챙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특이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종교도 관리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박 : 저희도 굉장히 관심이 많은 곳이 문체위예요. 주로 저희가 정치부처럼 일반 취재도 하지만 문체위가 종교를 다루다보니 국회에서는 취재할 것들이 많아요.

김 : 특히 이제 사찰이라는 곳은 우리나라에 900개가 넘는 사찰들이 있는데 사실은 다 문화재급이잖아요. 그래서 잘 보존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또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불교 문화라든가 여기서 또 파생돼 나오는 철학이나 이런 것들도 계속해서 널리 전파하고 알리고 보존해야 될 그런 의무도 있어요.

박 : 알겠습니다. 사실 문체위 위원으로서 이렇게 일을 하고 계시지만 불자로서의 면모를 오늘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 뵙지만 굉장히 친근하다. 그게 굳이 뭐 가수이셨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7월에 첫 번째 대표 발의 법안을 발표하셨다고 제가 들었는데 어떤 법안입니까?

김 : 첫 번째는 '블랙리스트 방지 특별법'이라고 저희가 가칭으로 해놨는데 이것이 이제 과거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라든지 그때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대한 것들이 아직 정리가 다 안 됐어요. 

박 :  박근혜 정부 문화체육인 블랙리스트 관련한 법이군요.

김 : 네. 그때 문서도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고 정황들도 발견이 됐는데요. 그걸 증명을 하는 문서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 실장서부터 많은 분들을 처벌했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9천 명이 넘는 그런 문화예술인들이 피해를 당했고 검열이나 지원 배제를 당하면서 한동안 생활이 굉장히 힘든 분들도 계셨는데, 그때 당시 대통령 탄핵 열기와 함께 이렇게 넘어가게 되면서... 사실은 블랙리스트를 위해서 만들어진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그 내부에, 또 하필이면 당시 미투 사건들이 굉장히 많이 부각이 되면서 그 내용들을 같이 담다보니까 조금 피해자 지원이나 아니면 과거 진상규명 부분에 대해서 조금 소홀하게 넘어간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이 그 법에 그러한 우리가 바라던 내용들이 다 담기지 않았다라는 요구의 목소리가 굉장히 높았고 불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예술인 권리보장법'하고 '블랙리스트 특별방지법'하고 두 가지가 이제 한 가지의 패키지로 해서 나가게 되는 건데 일단 '예술인 권리보장법'부터 개정을 했죠. 앞으로 다시는 국가기관이나 예술기관이나 공무원이나 이런 사람들이 문화예술인들을 의도적으로 탄압하거나 그러지 못하도록 기존의 과태료였던 부분을 과징금으로 엄청나게 올려서 이제 다시는 하면 이제 큰일 난다. 이제 어마어마한 이제 그 금액을 배상을 해야 된다는 부분이 명문화됐습니다. 

박 : 정부나 공무원의 개입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됐군요.

김 : 그렇죠. 어떤 사상적인 이유가 자신과 안 맞는다고 배제하지 말란 부분이고요. 그런 정황이 발견이 됐을 때 민간인이 아무리 화가 나도 그 사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조사를 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감사원에 감사 요구를 할 수 있도록 그 두 조항을 이제 개정을 한 겁니다.

박 : 그렇군요. 그 처벌이 강화되고 감사원에 이걸 고발한다고 해야 되나요? 그런게 가능해지는 것이군요.

김 : 감사 요구를 하는 거죠.

박 : 네. 감사 요구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김 : 그런 것들을 하는 이유는 뭐냐하면, 블랙리스트라는 게 단순히 예술인들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자유롭게 문화예술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그 문화예술 작품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나는 이러한 생각 저러한 생각을 말할 수 있을테고, 그 작품을 통해서 여러 방향으로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자유롭게 사고를 할 수 있는 그런 바탕을 아예 못하게 하는 게 되는 거거든요. 저런 생각을 하면 큰일난다고, 말하자면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버리게 되는 거죠.

박 : 검열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군요.

김 : 그렇죠. 그러면 국민들도 자기들이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굉장히 불온한 걸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내지는 그림을 보면서도 막 불안해하게 되는 그런 것도 있고요. 작품을 검열하고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국민들에 대한 인권적 또 문화적 권리를 박탈하는 거고 헌법적인 권리에 대한 침해라고 보고 있는 거예요.

박 : 예 알겠습니다. 이런 법안을 만드실 때 아무래도 문화예술인으로서 현장에 계시다 보니까 관련된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셔서 대표 발의까지 이어지신 건가요?

김 : 많이 들은 것도 있고요. 저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결국은 부처님이 꿈꾸시던 세상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안 좋다. 그러니까 그 만일에 국가라는 곳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를 하는 곳인데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그런 활동을 했다고 그런다면 이것은 반드시 응징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박 : 시정이 아니라 응징을 해야 된다.

김 : 그렇게 생각을 했고요. 불자라면 그냥 뭐 어떻게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는 게 사실은 좋은 게 아니냐 이런 생각도 할 수가 있겠지만,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 그런 악을 좀 정화하는 것이 또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 봅니다. 

박 : 예토를 정토로 만드는 게 또 이 부처님 사상 아니겠습니까.

김 : 저희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깊은 뜻을 다 알 수는 없어서 이렇게 만이라도... 불교의 제일 큰 기본 바탕은 평등인 거잖아요.

박 : 그렇죠. 자타불이

김 : 내가 너보다 높이 있으니까 내가 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너한테 돈도 안 주고 네가 하는 일을 막을 거야. 이 것은 분명히 권력적인 체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 동등하게 보고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 자유 이런 것들을 다 인정을 하는 것들이 결국은 부처님께서 얘기하는 그런 정토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이렇게 또 제 나름대로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박 : 불자 의원이시다 보니까 인터뷰하기가 편안하고 좋은데요. 그리고 국회에서 또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어요. 당내에서 조국혁신당이 12개 비례의석으로 제3당의 지위를 갖고 있는데 원내 부대표 지금 역임하고 계시잖아요. 이거는 어떤 역할입니까?

김 : 의원님들이 총 12분이 되시니까. 원내 행정을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그래서 원내가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 내지는, 원내에서 조국혁신당의 이름으로 어떤 메시지를 낼 것인가 이런 입장들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회의해서 정리하기도 하고 또 메시지를 발표를 하기도 하고 또 원내에서 의원님들끼리 수평적으로 소통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의원들 간의 모임이나 아니면 세미나 포럼 이런 것들을 만들기도 하고 기획도 하고 그런 정책 방향도 얘기를 하고 뭐 이런 잡다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박 : 원내 총무 같은 느낌으로 보면 됩니까?

김 : 주로 수석부대표이신 정춘생 부대표가 하고 계시고요. 원내대표는 황운하 대표이시니까. 황운하 원내대표께서는 타당 원내대표랑 입장을 조율하신다든지 이런 것들을 하시고 원내 수석부대표님께서 워낙 당직자를 오래 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굉장히 업무를 잘하고 계세요. 저는 지금 일을 지금 배우고 있는 상황이고 아직까지는 제가 하는 일이 사실은 많지가 않습니다. 이 일을 다 모르니까요. 그래서 수석 부대표님한테 맨날 죄송한 마음이죠.

박 : 참 바쁘게 의정 활동하고 계신다 이런 느낌이 제가 옆에서 이야기 들으면서 팍팍 드는데요. 국회에 입성하기 전과 관련해 좀 여쭙겠습니다. 가수 리아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잖아요. 원래 정치를 좀 하고 싶으셨나요?

김 : 아니요. 정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전혀 없었고 다만 제가 가수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부침이 좀 있었거든요. 회사랑도 헤어지고 그 것은 결국은 사람의 욕심에 의해서인 거고. 욕심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상대하려다 보니 저는 너무 어렸고 거기에 대해서 대처를 잘 하지도 못했고... 이러다 보니까 나중에 마음을 굉장히 많이 다치게 되는 거죠. 자기 변호도 못할 정도로 정신이 힘들었어요.

박 : MBTI는 I이신가요? 

김 : 아니요. 너무 어리고 신인이다보니,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는 거예요. 억울하긴 한데 그랬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겪고 나니까 다시 가수를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되나 생각을 하는데 그때 손을 잡아서 끌어올려준 분들이 역시나 제 노래를 좋아하시고 그랬던... 정말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셨고요. 그렇게 해서 활동을 제 돈이라도 만들어서 하고 또 다른 일도 하다가 그걸로 자본을 만들어서 또 싱글도 내고 이러다 보니까 세월이 흘러갔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제가 인기가요 1위를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은 지나간 거죠. 그 대신에 저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좀 생겼고 조금 여유 시간이 생기니까 그 동안에 나를 이렇게 여기까지 먹고 살게 해주고 죽지 않고 살게 해준 사람들한테 굉장히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노래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었다면, 제가 지금은 노래로 많이 즐겁게 못해드리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마음에 좀 외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원래 예전부터 그랬고, 그래서 그 외로움을 채우는 방법이 어떤 사람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아니면 남친을 사귀거나 여자친구를 사귀거나 자기 가족을 만들거나 뭐 이런 것들인데요. 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또 이렇게 채워지거든요. 그래서 그런 활동들을 좀 늘려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유기견 봉사 같은 것도 했어요. 꽤 오래됐죠. 인터넷에서 식용 개들 사진을 봤어요. 아무리 식용 개들이라도 이렇게 정말 조그만 케이지에 큰 개들을 이렇게 저렇게 그냥 구겨 넣듯이 넣어서 도무지 숨을 쉴 수도 없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사진을 보고 그때부터 뛰어들어서 그때 그 기사를 냈던 단체에 제가 연락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거 하지 못하게 서명 운동 같은 거 받아준 게 계기가 돼서 그 이후에도 종종 때가 되면 혹은 시간이 나면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요.

박 : 삶의 의미를 그 곳에서 좀 찾으셨군요.

김 : 그리고 제가 운동 좋아해서 스쿠버 다이빙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바다 정화 활동도 하게 됐어요. 바다에 들어가면 해초 같은 것들이 많고 막 이게 아니에요. 물고기들이 막 돌아다니고 이게 아니라. 바다가 사막화돼 있거든요. 그래서 사막화를 시키는 그 원인이 뭐냐 하면은 결국은 불가사리 유해조수, 유해한 불가사리들 뭐 이런 것들 하고 주로 어구들이 많이 나와요. 그물이라든지 폐그물 같은 거 때로는 이제 소주병도 있고요. 캔도 있고 비닐봉지도 있고. 그래서 바다에 들어가서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그런 것들을 했었죠. 그런 활동들이 저는 정말 미미하게 하는 거지만 그래도 그 주변에 살아 숨쉬려고 그러는 물고기 한 마리한테는 도움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냐면 '그래 한 사람이라도 내가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의정활동 해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 거고요. 조국 대표님은 저는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제가 그런 활동하고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분들이 말씀해주시고 추천을 해주셨대요. 그래서 그날이 토요일 날 밤이었는데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더군다나 저는 그때 느타리버섯을 볶고 있었기 때문에 불을 꺼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박 : 볶았어요? 볶고 있었다고요.

김 : 네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불을 끄면 좀 덜 익을 것 같은데 이걸 꺼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도 되고, 밤이 늦었는데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니까 이걸 받을까 말까 고민이 생겼었던 거죠. 한 번 받아보자. 그리고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길래 받았더니...

박 : '안녕하세요'

김 : 네. 불은 일단 끄고 '안녕하세요 조국입니다' 그러는데 딱 목소리 들으면 그 조국 대표인 줄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조국 대표님이 월요일날 입당식을 하려는데 전문가 입당을 시키고 싶다고 올 수 있냐고 하셔서 문화예술분야를 필요하신가 생각에 '그래 그 쪽으로 자문이라도 해드릴 수 있으면 좋지'라고 해서 덜컥 간다고 그런 거예요. 그러고 밤새 고민을 했죠. 내가 어마어마하게 일을 저질렀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입당을 해서는 입당 연설하자마자 모두가 다 당 내에서 비례대표 서류를 준비를 하는 그런 분위기로 이제 흘러갔어요.

박 : 입당하면 일단 비례대표로 출마를 해야 되는 상황이군요.

김 : 다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정신없이 서류를 며칠 만에 준비를 했고요. 그리고 경선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경선 때 또 저희 어머니가 되게 많이 아프셨어요. 그래서 저도 어머니 지키느라 응급실 같이 가 있었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투표하라는 독려를 많이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경선 때 좋은 순번을 받아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어떻게 보면 제 생각에 '너는 그냥 봉사하는 일을 해라'라고 부처님이 인연을 만들어주신 게 아닌가 생각을 하고, 어떤 분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서 매우매우 몇십 년간 노력을 해도 안 되는 분도 있고 지금 저 같이 아무 생각 없이 느타리 버섯 볶던 애는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고 이러는 거 보니까 그냥 저는 그렇게 '남들 노래로 그동안 즐겁게 해줬으면 이제는 좋은 일 많이 하고 좋은 법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 눈물 많이 닦아줘라, 그래서 눈물을 부르던 가수 리아가 이제 눈물을 닦아주는 김재원 의원으로 변신을 해라' 이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박 : 과거 한 마리 강아지, 또 바다의 눈물을 닦아주다가 이제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 이렇게 좀 더 넓은 운동장으로 나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김 : 부담감도 매우 큰 건 사실이에요. 책임감이 더 많이 느껴지고요. 막 좋고 이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준비가 부족할까봐 걱정이 됐어요. 왜냐하면 저는 국회의원을 준비했던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내가 그만큼 빨리 따라갈 수 있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서 밤에도 잠 못 자고 가면 법의 구조라든지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국회법, 헌법 꼭 봐야 된다고 그래서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또 다음 날 기사 나갈 거 있으면 기자회견문이나 그런 부분들을 제가 직접 수정을 하고 고치기도 하고요. 이번 법안도 굉장히 디테일하게 살펴봤고요. 제가 아는 아는 상식 선에서 이게 틀리지 않는가 또 어떤 때는 모르는 용어가 있어서 막 검색하기도 해요.

박 : 의원님의 큰 장점은 시민들 안에서, 어떻게 보면 시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곳을 보시면서 국회의원이 되셨기 때문에, 뭔가 학술적이라든가 법안이라든가 이렇게 전공한 분들과는 또 다른 법안들을 만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 그럴 수 있죠. 그리고 그 마음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국회의원 그러면 굉장히 높은 곳에 있고 대한민국에 300명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냥 요새 지하철도 잘 타고 다니고요. 버스도 잘 타고 다니고 그러거든요. 바닥에 붙어 다니니까 내가 키가 작아서 하하. 그래서 잘 안 보이시나 봐요. 그래서 그렇게 크게 티 내시는 분은 없는데 가끔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깜짝 놀라는 분은 계세요. 그냥 그렇게 친근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도 법당 가서 부처님을 뵙고 왔는데 항상 다짐을 하는 게 뭐냐면 '지금의 그 마음을 잊지 마라', 특히 일반적인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랄까요? 이 배지가 있니 없니 신경 쓰지 말고 가장 힘들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잊지 마라. 네가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으니 그걸 잊지 마라 이걸 매일 생각합니다.

박 : 국회에서 예전에 취재하면 저 배지라는 게 굉장히...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 반지처럼, 프로도가 이렇게 반지를 잡고 있으면 미치잖아요. 저게 무슨 마력이 있나 왜 자꾸 했던 분 또 하고 싶어하고. 자꾸 권력에 이렇게 목매실까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의원님께서는 초심부터가 이렇게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 예전에 고생을 많이 해보기도 했고

박 : 그렇습니까? 

김 : 제가 어릴 때는 네팔이라는 나라에 살았거든요. 네팔을 제가 80년에서 84년까지 살았는데, 우리나라도 그때 개발도상국이었지만 네팔은 우리보다 훨씬 더 못 살던 나라였어요. 그러니까 거기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다 보면 이를 옮기도 하고 막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 힘든 상황에서 노숙을 하거나 다 헤진 옷을 입고서도 오체투지를 하면서 순례를 하는 티벳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티벳 사람들은 가만히 보면은 나라가 없고 그래서 어디 가서 주권 행세를 할 수가 없고, 여권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고. 그런 걸 봤을 때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우리가 태어나서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성경에 나오는 말이지만 긍휼히 여기는 그런 마음, 그래서 하나라도 도와주고 그럴 수 있는 마음을 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길을 걸을 때도 사실은 개미도 안 밟으려고 노력해요. 실제로 개미도 안 밟으려고 노력하고 어느 날은 아버지랑 인도에 갔는데 거기 길에 강아지가 막 돌아다니잖아요. 개 한 마리가 전신에 피부병에 걸려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고 그러고 있더라고요. 제가 다른 건 해줄 수가 없고 그냥 가지고 있던 비스켓을 좀 줬어요. 배도 많이 고파 보이길래 그랬더니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었어요. 그 강아지를 구조를 해 줄 수는 없었지만 그렇지만 그 비스켓 먹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랐죠. 

박 : 눈물을 닦어주셨군요.

김 :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비스켓 한 통을 다 먹었으니까요.

박 : 근데 네팔에 사셨었어요?

김 : 80년에서 84년인데 제가 5살 때부터 10살까지 살았어요. 룸비니도 갔었고요. 보드가야도 갔었고, 또 인도 쪽에는 아잔타와 엘로라라는 굉장히 유명한 석굴 사원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도 다 가봤어요. 그래서 불심이 가득한 그런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을 하시면 돼요. 5살에서 10살까지는 굉장히 외부에 영향을 많이 받을 때인데 정신적으로 그러한 문화 속에서 살았고요. 짐승을 굳이 잡거나 죽이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죠. 또 저희 증조 할머니 때부터 증조 할머니도 불교 신자셔서 예전에 절을 짓는데 좀 기여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박 : 공덕주셨군요.

김 : 그게 금호동에 있었던 안정사라는 절인데 지금 이사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절에 많이 하셨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또 저희 할머니께서 자주는 절에 못 가셔도 저도 물론 자주 못 가지만, 어찌 됐든 제 마음속에 있는 거를 털어내거나 고민이 있을 때 부처님한테 상의를 하러 갔죠.

박 : 그래서 오늘도 국회 정각선원을 가셨군요?

김 : 네. 정각선원을 찾았고 마침 정각회 총회를 하는 날이어서 새 회장님도 선출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우리가 여야가 따로 없이 불법에 의존해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자 이런 얘기를 하셔서 너무 좋았고요. 그리고 이제 법회도 듣고 공양하고 끝났는데 앞으로는 그러한 법들 많이 만들겠다고 제가 얘기도 했고 그래서, 불살생의 원칙 또 생명을 살리는 원칙 또 불자들이 마음이 편한 정책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박 : 불자라서 굉장히 좋았던 기억을 많이 갖고 계신 것 같은데 혹시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같은 게 있으세요?

김 : 부처님께서 모든 것이 다 연기법이라고 설법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인연을 잘 만들어야 된다. 그럴 수 있으면 사람 마음에 상처 주지 말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법이나 정치 같은 거 많이 하려고 합니다. 또 예전에 가수일 때도 물론 그랬지만 저는 지금 영향력을 더 크게 행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항상 몸가짐도 바르게 하고 나쁜 짓 하지 말고 그리고 너는 좀 힘이 들고 외로울지라도 다른 사람들은 많이 위로해 주는 그런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박 : 본회의에서 큰 목소리로 한 번 또 제압을 해 주시는 거 아닙니까?

김 : 이제 야유하고 그러실 때는 소리들을 크게 지르시는데, 사실은 제가 목소리가 제일 큽니다. 근데 저는 참고 있죠. 왜냐하면 제가 시작하면 너무 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그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거든요. 또 국민들 보시기에는 너무 안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저는 함부로 소리 못 내겠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가수 출신이다보니, 이제 국회의원 돼서 노래를 하면 안 된대요. 그 것이 안 된다는 쪽이 있고 된다는 쪽이 있고, 선관위에서는 1원이라도 돈을 받으면 된다고 그러고, 또 국회 사무처에서는 절대 절대 안 된다고 돈을 받으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거라서 안 된다고 그러고. 그게 부딪치는 게 있는데 국위 선양이나 아니면 우리 콘텐츠 수출이나 이런 것들,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그런다면은 해외에 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박 : 노래를 부르면 안 되나요?

김 : 양쪽의 견해가 다르시더라고요.

박 : 아. 여성 가수 최초의 국회의원이시잖아요.

김 : 그래서 전례가 없는 거죠. 그냥 국회의원이면 노래해도 되거든요. 근데 저는 직업이 가수였기 때문에 노래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도 조금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제가 그걸로 실제로 생활을 영위할 만큼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정말 상징적으로 1천 원 주세요라든지 1달러를 받는다든지. 

박 : 제 기억에 윤석열 대통령도 미국 가서 노래를 부르신...

김 : 대통령께서는 가수가 아니잖아요. 근데 저는 가수라서요.

박 : 직업상 프로페셔널 가수이기 때문에 노래를 불러서 뭔가 선거운동을 한다거나 그럴 수 있다는 거네요. 

김 : 그렇죠. 그래서 그 부분은 공익적 활동이라면 조금 양해를 좀 해 주셔도 좋지 않을까. 또 제가 어디 해외에 가서 노래를 해서 우리 콘텐츠가, 막 김이 더 팔리고 하면 좋잖아요.

박 : 그럼요. 흘렀어 눈물을 참지 못해... 이렇게 부르면 너무 좋지 않을까요?

김 : 또 그런 생각도 해보고 있고요. 다양한 것들이 이제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례가 없는 일인데 이렇게 많은 국민들께서 제가 경선에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신 거 뭐 이런 것들도, 이제는 다양하게 세분화된 그런 정책들을 두루두루 그렇게 세심하게 좀 살펴라 그러니까 네가 필요하다.  지금 콘텐츠가 우리나라 콘텐츠가 제일 잘 팔리고 있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이제 수출도 증대가 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제일 그게 필요할 때 해봤던 사람이 나서서 그런 일들을 더 잘될 수 있도록 네가 노력해라 이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박 : 그렇죠. 앞으로 OTT라든지 AI라든지 새로운 산업이 문화계에서도 어떻게 활용될지 지금 모르기 때문에...

김 : 그렇죠. 불교방송에서 제가 이렇게 방송을 할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또 유튜브도 만드시고 그러니까 굉장히 놀라운 일이...

박 : 이제 슬슬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불자의원이시고 하니까 참 나눌 이야기가 굉장히 많아서 아쉬운데, 정치인으로서 롤모델이 있으세요?

김 : 정치인을 롤모델로 삼을 게 아니라 내가 4년 동안 하나하나씩 이렇게 스스로 정치 효능감을 느끼고, 그걸 보람으로 만드는 거죠. 국민들이 그걸 느끼셨을 때 또 '이런 거는 법을 잘 만들어줘서 기분이 좋았어'하셨을 때, 사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발의하고 기자회견을 같이 예술인들하고 했는데요. 이런 게 이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하셨대요. 그러면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면 이제 저는 눈물이 날 것 같잖아요. 그래서 화장실 가서 막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제가 '너무 좋아 내가 드디어 쓸모있는 일을 해냈구나'이런 생각이 들면서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보다 더 좋았어요. 

박 :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김 : 울지 않았습니다.

박 :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입니다. 의원님 22대 국회의원으로서 임기 내에 이것만큼은 꼭 하겠다. 약속이나 포부가 있으세요?

김 : 문화 예술 체육 관광까지 이제 다 소관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일들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먹거리로 활용되어서 지역에서도 그걸로 돈을 벌고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직업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정말 굉장히 좋은 곳들이 많은데 해외에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곳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알릴 수 있는 그런 아이디어와 그걸로 인해서 지역 주민들이 문화예술이 바탕이 돼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사실은 꿈이에요. 

박 :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더 잘 먹고 살 수 있는 어떤 기반을 만들겠다.

김 : 그걸 전국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엄청나게 큰 욕심이죠. 

박 : 지금 굉장히 큰 이야기를 하셔서, 임기 4년이 정말 기대가 됩니다. 새로운 국회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실 것 같습니다. 불자 의원이시기도 하시니까 저희 불교방송으로서는 열심히 또 응원을 보내겠습니다. 

김 : 고맙습니다. 국회의 법당이 24시간 열려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잠깐씩 지치거나 그럴 때는 거기 가서 삼배 올리고 그리고 향도 하나 피우고 하면서 제 마음도 좀 다스리고 그리고 다시 사람들에게 좋은 일 만들어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서 의정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 : 지금까지 22대 국회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의원님 고맙습니다.

김 : 감사합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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