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에 만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스크린을 응시한채 일어나지 못했다. 이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지난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감독인 빔 벤더스는 독일 출신으로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등 걸작을 연출한 명 감독으로 잘 알려져있다. 고등학교때 여배우 나스타샤 킨스키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리 텍사스'를 봤다가 남자 주인공이 무표정한 얼굴로 정처없이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던 기억이 난다.  주연 배우 ‘야쿠쇼 코지’는 ‘쉘 위 댄스’ ‘실락원’ ‘우나기’ 등에 출연해 일본의 국민 배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영화 '잠자는 남자'에 대한민국의 국민배우 안성기와 함께 출연했고 어제(20일) 방한해 한국 관객들에게 무대 인사를 하기도 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줄거리는 지극히 평범하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60대의 독신남으로 도쿄의 공중 화장실 청소원이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 도쿄 시내 공중 화장실 여러군데를 깨끗이 청소하고 다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주인공은 좌변기와 비데 장비 등 화장실 내부 곳곳을 정성껏 닦고 청소하고 정리한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치우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거룩한 종교 의식을 집행하는 수행자의 풍모가 엿보이는 듯하다. 여기에 도쿄 공중 화장실 건물의 세련된 조형미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인공은 출근하기 전에 집 앞 자동판매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서 차에 오르고 점심시간에는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끼니를 때운다. 일을 마치고 지하 상가에 있는 식당에서 레몬소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는 서점에서 사온 헌 책을 사서 읽다가 잠이 든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 대중 목욕탕에 가고 틈나는대로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며 공원의 나무와 숲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한다. 출근할때는 자신의 작은 차에서 항상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6,70년대 올드팝송을 듣는다. 영화는 이처럼 주인공의 반복되는 일상을 놀랍도록 차분하게 마치 다큐멘터리식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이들은 ‘매일 이어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고 입을 모은다. 늘 반복되는 삶의 패턴은 가슴이 뛸 정도의 큰 만족감과 환희심, 짜릿한 쾌감 같은 것을 주지는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과 편안함, 하루 하루를 살아낸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며 살아가기에는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근심과 걱정, 괴로움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행복과 성공, 삶의 성취에 대한 강박이 있거나 남의 시선과 주변 환경을 지나치게 의식해 스스로 삶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일상의 고단함을 가중시키는 이들도 주위에는 많다. 그래서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도 이 영화는 일러주고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인간과 인간간의 ‘연결’이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지나칠 정도로 과묵하지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공원 벤치에서 만나는 젊은 여성, 거리의 노숙자와 어린 아이에게도 눈 인사를 잊지 않는다. 자주 가는 식당과 서점, 술집 주인과 종업원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하루를 버텨낸 이들에게 말없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히라야마가 퇴근때마다 들르는 지하 술집 주인은 주문받은 술과 안주를 내놓을때마다 주인공에게 오늘하루도 정말 수고했다는 덕담을 잊지 않는다. 헌책방의 여 주인은 주인공이 고른 책의 저자에 대해 위트를 담은 멘트를 건넨다. 자신의 일상 속에는 이처럼 수없이 많이 연결된 인간들이 존재하며 이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따뜻한 연민의 정을 갖는 일이 꽤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인간 관계를 맺는데 서툴러 괴로워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보기 좋은 포장지로 꾸미려고하다보니 인간적으로 다가가는데 장애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하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대하며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는데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이번 기회에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웃들이나 내가 아는 이들, 내 곁을 스쳐가는 이들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 자신은 물론 이웃을 사랑하는 법까지 배우면 하루 하루를 그야말로 '퍼펙트 데이'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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