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응천 국가유산청장 인터뷰 "국가유산으로 국민 상생하는 것 목표"
"'문화재 관람료 해결'‧'광화문 월대-현판 복원' 가장 기억에 남아"
"환수와 활용은 종이의 앞뒷면...먹이 노리는 사자처럼 환수 협상"
"청와대‧경복궁 등 문화유산 공연 활성화돼...국민 인식 변화 실감"
"퓨전한복 논란은 '전통한복 활성화'에 방점...전통美 널리 알려야"

BBS불교방송 시사 프로그램 '박준상의 시그니처타임'

진행 : 박준상 사회문화부 기자 
출연 :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방송 : 7/6(토), 7/7(일) 저녁 6시 20분(BBS 라디오)

박준상(이하 박) : 올해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1999년 문화재청으로 조직이 승격된 이후 25년 만에 변화를 맞았는데요. 초대청장이시죠? 최흥천 국가유산청장님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응천(이하 최) : 안녕하십니까. 국가유산청장 최응천입니다. 

박 : 청장님, 요즘 바쁘시죠?

최 : 요새 기후 변화가 아주 극심해서 또 여기저기 현장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박 : 요즘 장마철이고, 또 최근 지진도 생기고

최 : 그러니까요. 우리나라도 이렇게 지진에 이렇게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박 : 특히 전국의 문화재를... 아 이제 국가유산이죠. 국가유산들을 이렇게 다루시다 보면 확실히 챙길 것들도 많고 전국 곳곳을 다니실 것 같은데요. 본격적으로 인터뷰 시작해보겠습니다. 앞서서 말씀드렸지만 국가유산 시대가 열렸습니다. 60년 동안 널리 쓰인 이 문화재를 대체하는 건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최 : 문화재라는 용어는 사실은 그 문화는 물론 컬처라는 좋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 뒤부터 즉, 재화가 문제였죠. 그러니까 문화를 재화, 영어로 'Property'라는 금전적인, 재화적 개념으로 인식하는 데 따른 여러 가지의 변화가 필요했던 거고요. 어떻게 보면 문화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게 일본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 두 나라가 문화재라는 말을 써왔고 다른 나라에서는 문화재라는 말을 쓰지 않고 문화유산 또는 유산 즉 헤리티지(heritage) 개념으로 쓰고 있죠. 그래서 62년도에 저희가 문화재 보호법이 생긴 이래, 무려 정말 오랜기간을 거쳐서 2024년인 바로 올해, 문화재보호법을 대체하는 '국가유산기본법'이 작년에 제정이 돼서 시작이 됐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라는 용어에 너무 익숙해 왔으니까

박 : 그렇죠.

최 : 지금도 문화재가 더 왜 편한 용어인데 굳이 이 용어를 바꾸냐 하는데요. 그 개념 자체를 이제 벗어날 때가 됐고요. 유네스코 기준에 맞추는 유산 즉, 헤리티지 개념을 활용해서 국가유산이라는, 즉 국가가 유산을 관리하는 그런 개념을 담은 것이 국가유산 체제입니다. 

박 : 제가 안 그래도 아까 문화재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썼는데요. 이 문화재라고 말할 때는 뭔가 정말 재화나 사물같은, 딱 단독적인 느낌이 있다면 유산이라고 하면 뭔가 먼 선조로부터 내려받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최 : 특히 인간문화재라고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사람 또는 천연기념물과 같은 이런 동물과 사람을 갖다가 재화 취급하는 이 개념은 원래부터 용어에 맞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진작에 바뀌어야 할 개념인데 너무 그걸 오랫동안 써오다 보니까 익숙해져서, 국가유산이라는 용어가 지금 굉장히 생소하겠지만 이것도 자꾸 쓰다 보면 더 멋있는 용어가 될 것 입니다. 

박 : 예 그렇네요. 인간문화재, 항상 이런 말을 저희가 썼는데 사람인데 사물의 느낌을 대비한다는 게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최 : 국가무형유산으로 이제 대체됐습니다. 

박 :  예 알겠습니다. 저도 그럼 이제 국가무형유산에 익숙해지도록 노력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국가유산청 출범 이후 업무적으로는 좀 많이 바뀐 게 있나요?

최 : 5월 17일 국가유산청이 출범했습니다. 저희들이 출범과 동시에 새롭게 내세운 슬로건이 있습니다. 아마 기억하시기로 그동안 문화재청은 과거의 보존, 그러니까 전승이 기본이었죠. 문화재청의 기본 슬로건이 뭐였냐 하면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그것도 좋은 의미인데, 가만히 내용을 살펴보면 그냥 그대로 어제 것을 물려주겠다고.

박 : 아무 변화 없이 손대지 않고.

최 : 네. 손대지 않고. 그래서 문화재청은 늘 규제와... 굉장히 뭐랄까. 모든 걸 갖다가 이렇게 과감하게 못 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불편함을 주는 기관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가유산청이 되면서 바뀐 게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의 가치'라는 슬로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이 더 이상 국가유산, 즉 옛날의 문화재가 오늘날의 삶에 불편하거나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국민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거기서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게 저희들의 모토고 그렇게 슬로건도 바꿔 나간 겁니다.

박 : 국가유산청 출범 이후, 저희의 관심사는 불교계 성보들인데요. 불교계 성보들의 관리와 보존 방식이 변화를 했다거나 또 적극적으로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게끔 한 사례가 있을까요?

최 : 우선 문화재청 시절입니다만, 작년이죠. 제가 기억하기에 5월 4일부터, 그동안 숙원사업이었던 '문화재 관람료'를 없앴죠. 제가 문화재청장 시절입니다만, 재임 기간 동안에 정말 여러 논란도 많았고

박 : 드라마에도 나오고

최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로 등장했던 이 문화재 관람료 문제를 정말 불교계와 저희가 아주 머리를 맞대서 "이 것은 더 이상 이렇게 논의가 필요 없다. 빨리 우리 시행합시다"라는 결론을 냈어요. 그래서 국가 예산 투입하고 바로 시행함으로 해서, 지금 무려 작년 대비 130%의 관람객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또 많은 분들이 사찰에 가서 불편함이 없다. 너무 기분 좋다. 그동안은 계속 그 문화적 관련 때문에 서로가 어떤 언쟁이 생기고 하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박 : 그렇죠. 문화재 관람료가 사라지면서 마음에 어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사를 찾을 수 있게 되고 또 거기 가서 명승 등 천연기념물도 즐기고 길도 걷는게 가능해졌죠. 진짜 우리 삶에 이런 불교 문화재들이 가까이 왔다, 아니 이런 불교 문화유산이 가까이 왔다 이런 느낌이 딱 드는데요. 또 청장님께서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을 역임을 하셨잖아요. 국가유산청을 이끄시면서 해외에 소재한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환수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국가유산청 출범으로 환수 전략도 뭔가 변화가 있습니까?

최 : 네. 변화가 있어야 되죠. 그러니까 (회암사지) 보스턴 사리구 협상 자체를 계속 진전하지 못했던 이유가 물꼬를 틀려면 뭔가가 좀 계기가 마련돼야 되거든요. 이거를 무조건 반환을 하겠다라고만 하면 협상이 이루어질 수 없어요. 

박 : 그쪽 입장에서는 안 주면 끝이잖아요.

최 : 만날 이유가 없죠. 귀찮게 하면 안 만나죠.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일본에서 대표적인 동경박물관에 문화유산도 많고,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에서 반출된 국가유산이라고 소위 얘기하는 문화유산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것을 '무조건 반환만 해달라, 무조건 돌려달라, 무조건 불법 반출이다' 이렇게만 주장해서는 그건 반환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을 할 때도 반환 받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노력을 하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물론 그것이 불법 반출된 걸로 증명이 되는 경우는 그건 찾아와야죠. 수단과 방법과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서 다 해야 되겠습니다만, 그것이 아닌 경우는 거기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된다는 거죠

박 : 현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하시는 거죠?

최 : 환수와 활용은 어떻게 보면 종이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충분히 우리 문화유산이 활용될 수 있으면, 요즘엔 국외 전시도 우리가 보내주는데요. 거기서 현지에서 활용될 수 있다. 저는 보스턴 미술관 사리기도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박 : 그렇죠.

최 : 보스턴 미술관이 충분히 한국 고려시대의 사리장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렸고, 다만 그것이 보스턴에서만 머물러 있어서 한계가 있습니다만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서 국내에 알려지고 또 해외 전시에 출품도 되고 하면 고려 14세기 사리기의 아름다움과 그 우수함이 널리 알려지듯이 공유될 수 있는 거죠. 즉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공유 문화유산에 대한 개념을 바꿀 때가 됐다. 그래서 아마 그 첫 번째 사례가 바로 그 워싱턴에 있는 주미 공사관 건물입니다. 저희가 매입을 했죠. 지금 그 지역의 최고의 명소입니다. 사실 건축이기에 우리가 사들여도 그 것을 찾아올 수는 없잖아요. 뜯어갖고 올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만 사들이고 그걸 지금 현재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고, 바로 미국 사무실 즉 국외소재문화재단 사무실인 미국 사무실이 거기서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 : 워싱턴 주미 공사관이요?

최 : 네. 거기 자체를 미국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환수와 활용은 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되고 환수만이 모든 게 능사는 아니다. 활용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개념이 바로 국외소재 유산 즉 올 수 없는 문화유산을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전략 중에 하나입니다.

박 : 그러니까 현지에서 반환되기 어려운, 불법 반출의 증거가 없는 문화유산의 경우에는 현지에서 활용 가능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 방법을 찾고, 반면에 약간 환수가 가능할 것 같은 그런 것들은 매입 귀찮게 하지 않는 선에서의 협상을 시도한다. 기분 좋게 좀 만들어가지고...

최 : 그 매입 과정은 사실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그걸 조급하게 서둘러서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려면 안 됩니다.

박 : 그러니까 상대방도 저희의 입장을 이해를 해줘야만 이게 가능한 거잖아요.

최 : 이렇게 해서 들어온 문화유산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억나는 것이 제가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 때 환수했던 나전칠기. 그게 한 10여 년 만에 들어온 겁니다. 오랜 협상 끝에 그 소장가가 다시 미국에 팔았던 걸 다시 또 사들였던 과정을 다 알고 있으니까 그걸 추적을 하고 다시 접촉을 하고 이래서 한 14년 만에 들어왔던 사례가 있고요. 이렇게 마치 사자가 먹이를 노리듯이 조금씩 차근차근 한 발자국씩 다가가야지 그걸 덥석 물려고 그러면 도망가게 돼 있죠.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국외유산의 환수는 정말 공을 들이고 차근차근히 열과 성을 다해야 된다.

박 : 그러면 지금 사자가 먹이를 찾기 직전에, 뛰어들기 전에 그런 환수 가능한 문화유산도 있습니까?

최 : 네 지금 있고, 그 것은 이제 밝힐 수가 없죠. 

박 : 기대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또 궁금한 게 뭐냐 하면 이번에 보스턴 사리기처럼 임시 혹은 영구 대여하는 그런 방안이 많이 추진이 될 수 있을까요?

최 : 영구대여라는 게, 처음부터 영구대여가 안 되죠. 처음 임시 대여를 통해서 서로 공유하고, 서로가 이렇게 교류를 하면서 자기네가 봤을 때 '이야 이게 한국에 돌아가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네' 라는, 그러니까 그것은 이제 반환이라는 목적만 안 두면 이 사람들은 충분히 마음의 문을 열거든요. '대여'라는 목적은 그래서 시작이 되는 거고요. 잘 아시는 프랑스에서 대여한 의궤 같은 경우는 지금도 우리 소유가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반환 됐다고 생각하시는 그게 절대 오산입니다. 영구 임대입니다. 영구임대지만 소유권은 아직도 프랑스에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소유권만 주장해서 된다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영구임대는 아주 적극적인 우리의 반환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박 : 앞으로도 그럼 더 많이 추진이 될 수 있다.

최 :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 : 그렇게 해서 또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정말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열망이 더 높아지면 그쪽에서도 또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최 : 그래서 보스톤 사리기의 예도 있고, 새로운 진전의 시작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박 :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국가유산기본법 이번에 5월달에 이제 국회를 통과했잖아요. 국외소재 문화유산의 지원에 관한 사항은 제외돼 있다 이런 얘기를 제가 들었어요.

최 : 저도 검토를 하고 있는데 그 것은 제외했다기보다는 저희가 앞으로 여러 가지를 보완할 그런 문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마 시기가 좀 지나서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이미 기본적인 사항이 나와 있으니까 그걸 정리하고 법률을 좀 이렇게 다듬으면 충분히 검토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되고요. 국내 문화유산과 별도로 이제 국외 문화유산도 별도의 법의 제정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부분에서 그런 이제 활용과 환수에 관한 법률이 정비가 되지 않으면 바로 많은 분들이 국가유산청에서 이렇게 국외유산 얘기를 하면 '야 무조건 다 찾아오지' 거기에 대해서, 뭐 이렇게 하는데 찾아올 수 있으면 저희가 안 찾아오겠습니까? 당연히 해야 되는 그건데 그 과정이라는 게 아까 말씀드렸지만 정말 지루하고 굉장히 오랜 그리고 솔직히 많은 예산도 투입이 됩니다. 반출되고 팔려나가고 도난당하고 뜯겨나가고... 지금 국가가 할 수 없이 다시 사들이고 있잖아요. 대가를 어마어마하게 치르고 있죠. 그러니까 그때 반출된 가격의 한 최소 10배에서 100배, 지금 그 이상도 소요되는 경우가 있어요. 중국도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까 사들고 있거든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여유가 생기고 어느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되면 사들여 올 수 있는 거는 사고. 비록 아픈 그 시기에 반출된 국가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을 되찾아오는 것도 하나의 저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박 : 예 맞습니다. 근데 이 협상 과정 중이나 특히 이런 문화유산의 매입 가격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것들은 공개가 되지 않는 게 정상이잖아요.

최 : 그렇죠. 왜냐하면 한 번 공개가 되면 그 가격 이상으로 안 내리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이 소장가가 밝히기를 절대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밝혔다가는 오히려 그 협상 절차가 파괴되는 경우도 생긴 적이 있습니다.

박 : 근데 이제 예전에 한 번 백제미소불 7세기 백제미소불 같은 경우에는 가격이 공개가 돼가지고.

최 : 맞습니다. 국회에서 거론이 되는 바람에 이도저도 못 하게 됐어요. 아주 대표적으로 잘못된 사례 중에 하나입니다. 

박 : 이번에 호암미술관에서 이렇게 공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많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보고 굉장히 감탄하고...

최 : 저희들 입장을 말씀드리면 그게 문화재청 시절에 가격 제한을 딱 뒀기 때문에 그 이상은 협상이 불가하죠.

박 : 국민적 관심사가 됐어요. 얼마인가 그것이.

최 :  소장가가 그 가격을 이미 거부를 했는데 우리가 다시 협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저희는 할 수가 없는 거죠. 저희들이 안타까운 것은 이 것이 민간 차원이든 국가유산청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어떻게 환수가 되거나 하면 정말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냥 저희들이 응원할 수밖에...

박 : 참 아쉬운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럼 이번에는 청장님의 임기 중에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 좀 여쭙겠습니다. 많은 일들을 하셨어요. 2022년 문화재청 12대 청장으로 오셔서 국가유산청 초대청장이 되기까지. 아마 역대 가장 많은 일을 한 분이 아닐까 싶은데 가장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최 : 많은 일이 기억나죠. 아까 문화재 관람료 문제도 제가 해결을 했고 광화문 월대와 현판을 복원을 했는데요. 광화문 현판 복원은 어떻게 보면 잃어버린 우리 경복궁의 복원에 정말 그 방점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980년대 저기 오래전부터 이게 광화문에 대한 복원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특히 월대라는 것은 이제 회철돼서 사라진, 19세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조성한 월대는 소통의 공간이거든요. 모든 사진에 다 남아 있어요. 거기에 난간석이 있고 그 앞에서 이제 임금과 백성이 만나서 여러 가지 소통도 하고 많은 행사를 했던 곳인데 그걸 일제시대에 전부 다 훼손시키고 전차 선로를 깔아버렸죠. 그런데 공교롭게 그 난간석과 석조 문화유산이 동구릉에 있었어요. 저희가 확인을 했고요. 다는 아닙니다만 많이 분산이 됐는데, 마지막 제일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광화문 앞에 보시면 서수상이라고 두 마리 동물상이 이렇게 쭉 놓여 있는데 그게 바로 호암미술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제보를 통해서 제가 직접 호암에 가서 삼성 쪽에다가 이 사정을 충분히 설명을 드렸고 그랬더니 흔쾌히 뭐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는 게 맞겠습니다'라고 해서, 삼성가로부터 그 서수상을 저희가 기증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월대 앞에 두 마리 서수상이 원위치에 원 모습으로 그렇게 배치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면 진정성이 회복이 되면서,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월대는 굉장히 명소가 돼습니다. 그동안 광화문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차선으로 지나가면서 바라보고, 먼발치에서 봤는데. 이제는 광화문을 조금 뒤로 넓어진 광장에서 바라보게 되고 거기에 또 현판을 제대로 고증에 걸쳐서 7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통해서 그 '묵질금자'라고 하는 그것도 희한하게, 광화문의 중건의 일기인 영건일기가 일본에서 발견이 됩니다. 거기에 그게 다 기록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토대로...

박 : 현판 제작 방법이 거기 적혀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최 : 검은색 바탕에 금판을, 그러니까 금에다가 도구만 금판으로다 글씨를 썼다라는 광화문 현판의 제작 일기가 다 기록이 돼 있고요. 그리고 모든 것들이 우연치 않게 인연이 돼서 발견이 되고 밝혀짐으로 해서, 한 140년 만에 광화문 월대 그리고 현판이 원래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됐습니다. 저는 작년 15일에 그 개막행사를 하면서 참 뿌듯했던 게, 물론 물론 논란은 있습니다. "왜 사라진 월대를 다시 복원했느냐. 광화문 흥선대원군이 복원하는 걸 꼭 해야 되느냐, 또는 현판이 원래 모습이 맞느냐" 뭐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희 고증의 기본 원칙은 마지막 사라지기 전까지의 모습으로 고증하는 게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태종이나 세조 시간에 어떻게 생겼는지 저희는 알 수가 없거든요. 발굴 조사를 통해서 그리고 흔적을 통해서 또는 아까 같은 영건일기와 같은 기록을 통해서 고증을 할 수 있는 범위까지 가장 근접해서 하는 것이 저희 목표고요. 그것에 맞춰서 복원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즐기고 기뻐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게 아마 제 임기 중에 가장 보람 있던 일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박 : 저는 또 청장님의 그런 모습이 생각나는 게 청와대 개방 당시였어요. 그때 정말 어떻게 보면 공격도 많이 받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난처했던 그 기자회견에서의 모습이 생각나는데요. 그 이후로도 이제 패션쇼라든지 공연이라든지 이런 게 청와대에서 이루어지면서 활용 논란이 있었어요. 방금도 월대도 말씀하셨지만, 이 전통문화를 어떻게 활용할까의 그 시각이 굉장히 천차만별입니다.

최 : 그러니까 이제 일부에서는 활용 논란이 있었죠. 궁궐이라든가 이런 전통문화 활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에, 왜 이거 훼손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설마 국가유산청이 훼손을 하겠습니까? 아니 지금 궁궐 프로그램들 보시면요. 이건 뭐 사이트가 폭주돼서 구티켓이라고 그래요. 그 티켓을 하기 위한 야간에 경복궁 야행 인파가 어마어마하거든요. 

박 : 저는 약간 기시감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걸 느끼는 게, 과거에 청와대에서 문화 공연 같은 걸 했습니다. 그 때 가수 비 씨가 나와서 넷플릭스에 상영되는 그런 이벤트를 했는데, 그때는 비판도 일었고, 또 보그(Vogue)에서 청와대 한복 사진을 촬영했는데...

최 : 뭐 한복이 맞느냐 가지고 저도 아주 공격을 많이 당했죠.

박 : 그런 논란이 아주 크게 일었었는데 지금은 뉴진스도 궁궐에서 공연을 하더군요.

최 : 많이 그만큼, 이제 1년 2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다는 걸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냐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이제 국민들의 의식도 달라졌고 청와대라는 개방의 공간이 너무 오랫동안 어떻게 보면 공개되지 않다가 너무 신성한 것처럼만 너무 인식이 됐던 게 아마 그 당시에 이렇게 논란의 중심이 됐던 게 아닌가 싶고요. 지금은 제가 봐도 청와대에 대해서는 아시다시피 그렇게 거부감이 없지 않습니까? 누구나 다 갈 수 있고 가서 볼 수도 공연도 할 수 있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마 초창기에 그랬던 것 같고요. 그런 걸 저는 좋은 경험을 토대로 작년에 5월로 기억을 하는데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바로 구찌 패션쇼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박 : 구찌 패션쇼...

최 : 그것도 어떻게 보면 획기적인 파격이죠. 전 세계에 120만 뷰가 송출이 됐습니다. 그 시간에. 그래서 구찌가 그냥 그걸 근정전을 모델로 삼은 건 아니거든요.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헤리티지를 중심으로, 거기를 문화유산으로 삼아서 자기네 홍보를 하는데 우리의 근정전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그때도 제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죠. '이건 해야 되겠다' 그래서 했는데 구찌가 결국은 뭐 얼마로 액수를 밝히면 안 되니까 경복궁의 모든 사업에 기부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앞으로 경복궁과 이런 것들이 전 세계 근정전의 모습을 가장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아마 그 패션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 : 그리고 최근에 경복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복 관련해서 논란이, 지금은 약간 식은 것 같긴 한데 뜨겁긴 했어요. 과연 한복이 어떤 것이 전통 한복이고 어떤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하면서 청장님께서도 그때 전통 한복에 대한 어떤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최 : 조금 이렇게 좀 뭐라 그럴까... 착오를 일으키시는 게, 제가 퓨전한복은 안 된다는 게 아니에요. 퓨전한복도 한복으로 역할을 하고 있죠. 근데 너무 퓨전한복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제 의견이었고. 왜냐하면 한복 생활이라는 게 우리가 국가유산청에서 무형유산을 관리하잖아요. 한복이 2년 전에 지정이 됐어요. 당연히 거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줘야 되고 이왕이면 저는 어떻게 보면 퓨전 한복도 좋고 전통 한복도 좋은데, 전통 한복이 너무 사라질 위기에 있으니까 이것도 살려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드렸더니 '퓨전 한복을 전부 우리가 금지시킨다' 이런 오해의 소지가 있었는데요. 전혀 그렇지는 않고요. 퓨전한복도 나름대로의 또 그동안의 여러 가지 10년여동 내려온 한복의 이런 활성화에 도움이 많이 됐죠. 다만 그것이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외국 사람들이 느끼는 우리나라 한복의 아름다움이 그걸로 오인할까 봐 새로운 더 아름다운 한복들이 있다는 걸 장려하기 위한, 그래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은 궁궐에서 아름다운 한복 사진 촬영대회라든가 한복을 통한 여러 가지 행사라든가 또 한복을 아름답게 알리는 이러한 패션쇼라든가 이런 걸 통해서 누가 봐도 한복이 이렇게 아름다운 면이 있구나 그리고 전통 한복이 이런 면이 있구나라는 걸 홍보하겠다는 게 저희 취지예요. 그런데 혹시라도 뭐 이런 근데 사실은 걱정이 되는 건 이런 퓨전한복이 너무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 눈을 씻고 쳐다봐도 전통 한복을 입고 다니는 분을 거의 못 보게 되니까.

박 : 약간 드레스화된 한복들이 많은 것 같아요.

최 : 그렇죠. 마치 트레이닝복 같은 이런 느낌을 받아서... 이거는 좀 우리가 금지는 못 시키더라도 전통한복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봐야겠다. 이게 바로 저희의 국가유산청에 앞으로 나아갈 지향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 : 근데 참 애매할 것 같아요. 경복궁 무료 관람이 한복은 가능하고 한복이 아닌 경우에는 유료 관람을 해야 되잖아요. 그럼 그 앞에서 어떤 것이 한복이고 아닌가 이런 판단을 또 이렇게 해야 되는데 말이죠.

최 : 앞으로 이제 한복 대여를 하시는 분들도 조금씩 이제 좀 아름다운 한복을 좀 보급화시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 : 예 알겠습니다. 스님들 가사장삼의 경우, 스님들이 가사장삼 입고 경복궁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최 : 있습니다. 저도 절대 제한한 적도 없고요. 약간 오해가 있는가 본데요. 스님들이 조선시대때 한복 입고 다니셨습니까? 승복 입고 다니셨어요.

박 : 그것도 전통의상이죠.

최 : 한복이라는 개념에서 이름만 아닐 뿐이지, 그 것은 뭐 전통 의상으로 보게 되고요. 그건 절대 입장을 제한한 적이 없습니다.

박 : 지금 이 방송을 보고 계신 스님들께서 경복궁 무료 입장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많이들 찾아주셔서 우리 전통 문화 향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로 돌입하겠습니다. 청장님, 이 현장과 학계가 인정하는 사실 저희 불교계에서는 잘 알려진 불교 미술 전문가이시고 또 범종의 1인자라고도 불리시는데요. 국가유산을 이렇게 행정적으로 다루시는 일을 하면서 좀 힘들었던 점이나 이런 게 있으셨는지?

최 : 역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불교 미술을 전공했고, 어떻게 보면 불교도니까 더 조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무 그쪽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

박 : 그렇죠. 지금도 애정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최 : 그렇게 얘기하는 게 있고 또 직원들도 사실은 제가 그렇게 할 때마다 약간 걱정스러운 게 있는데요.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기본적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건 뭐 제 원래 목표와 역할이 그렇고 그런데. 그것만 갖고 하면 당연히 제가 지탄이 돼야 되겠지만 저는 똑같이 다 하고 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늘 하는 얘기지만 기획예산처라든가 예산처에 가서 아니 불교 문화유산이 지금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몇 퍼센트인지 아시냐 70%가 넘고 있다. 당연히 불교 문화유산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설명을 드려요. 그리고 제가 쫙 이야기를 하면 약간 전문가적인 포스가 나오니까

박 : 그렇죠.

최 : 조금 이렇게 말을 조금 조심스럽게 하는 이런 점도 있고 그래서 이제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씀드리는데, 예를 들자면 바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올해 1월에 내소사 범종이 국보로 승격이 됐죠. 부안에서는 첫 번째 국보입니다. 제가 직접 국보 지정서를 들고 갔어요. 국보 지정서는 제가 직접 전달합니다. 보물이 아니고 국보의 경우.

박 : 직접 가셔서요?

최 : 지정서를 전달하다보니까 자꾸 절만 가게 돼요. 국보가 성격상 절에서 많이 지정되니까요.

박 : 그렇죠.

최 : 최근에는 또 얼마 전에 바로 송광사 팔상도 지정서를 전달했어요. 누가 보면 우리 청장은 맨날 절만 다니냐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사실 국보 지정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물론 밀양의 영남루도 국보가 됐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게 60년에 가까운 세월에 범종이 국보가 되는 걸 보면서, 사실은 제가 그 전에 10여 년 전부터 그 중요성을 역설을 하고 보고서를 썼어요. 그런데 제가 국보 지정서를 전달하게 되니까 이것도 시절인연 중에 하나가 아닌가라는... 아주 마음이 뿌듯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학문과 행정을 하다 보니까 저한테 이러한 좋은 복이 온다 이렇게 공덕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 참 보람이 있으실 것 같아요. 과거에 연구하던 불교 전통 문화유산이 국보로 지정되는 것을 보면. 국보가 되는 과정을 보시는 거네요.

최 : 내소사 범종은 더 뜻깊은 게, 제 '한국의 법종'이라는 책의 표지입니다. 그게 그 책의 가장 앞에 있는데, 정말 우리나라 종들 중에서 평가돼야 될 그 종이었는데, 그게 제 재임 기간에 평가받은거죠. 제가 국보로 올린 게 아니에요.

박 : 하하

최 : 전부터 올라왔던 걸 제가 있을 때 지정이 된 건데, 많은 분들이 제가 와서 지정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건 오산이거든요. 사심은 없었다.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뿌듯했죠.

박 : 예 알겠습니다. 학자로서 거의 평생을 보내셨는데 혹시 하고 싶은 연구나 아직 더 필요한 연구 이런 것들이 있으신가요?

최 : 제가 아마 학교에 더 있었으면 조금 더 책도 좀 집필 할 수 있었던 생각이 드는데요. 요새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책 볼 시간이 없죠. 논문 한 편 읽을 시간도 없고 자고 나면 그냥 현안에 집중을 해야 되기 때문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아쉬운 건 있습니다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불교공예라는 책을, 은퇴 후가 될지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료는 꽤 많이 모아놨어요. 그러니까 범종을 포함한 여러 가지 많은 공예품들을 망라한 그런 책을 하나 집필하는 게 제 마지막 소망입니다.

박 : 꼭 그 책이 출간되면 다시 이 자리에 한 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최 :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박 : 마지막 질문입니다. 청장님, 국가유산청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란다거나 또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이 있으세요?

최 : 제가 시작할 때 잠깐 말씀드렸지만 문화재청의 이름과 개념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불편해하시는 건 사실이에요. 뭐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디 개발 공사나 어디서 뭐 할 때마다 문화재 나오면 안 되고, 문화재 나왔다가는 큰일 나고, 또 문화재 때문에 모든 걸 귀찮게 하고 또 민속 마을 지정해서 거기 사는 분들을 갖다가 정주 요건을 갖다가 굉장히 어렵게 만들고, 이거는 이제 과감하게 저희가 탈피할 때가 됐습니다. 더 이상 국민들이 국가유산 즉 옛날의 문화재를 갖고 불편함을 초래하는 그런 청이 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500m로 한정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도 과감하게 저희가 그 지역의 특성에 맞춰서 500m가 일괄적인 게 아니라 어떤 때는 200m 혹은 300m 그래서 이렇게 원이 아닌 면 단위로도 저희가 다시 지정하거나 지역의 특성에 맞게 하고 있어요. 지역 주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은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바꿔나가는 법을 만들었고요. 또 하나는 이제 문화유산 즉 자기 집에서 뭐가 발견됐으면 이걸 자기가 발굴할 수 없잖아요. 이제 국가가 직접 예산을 투입해서 발굴해드립니다. 

박 : 옛날에는 그게 귀찮아질까 봐 몰래 박물관 갖다 놓고...

최 : 갖다 놓기도 하고 다시 묻기도 했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희들이 직접 발굴해 드리고 거기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하고 보상도 해드립니다.

박 : 그것 때문에 공사가 밀렸어요.

최 : 그런 것을 지원하려고요. 다만 이제 그 예산이 한정돼 전국을 다 할 수는 없고, 그렇게 꼭 필요한 건 저희가 하고 있고요. 아까 말씀드린 민속마을도 저희가 정주 여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밖에 외관만 뜯어 고치지 않는 데에서 내부는 얼마든지 개선하도록 저희가 도와드린다든가 이런...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더 이상 국가유산으로 피곤해하고 방해받고 규제받지 않는 생활을 만들어가는 게 저희 목표고요. 그렇게 이제 시작을 했습니다.

박 : 예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장님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한 말씀해주세요.

최 : 62년 동안 사용되었던 문화재라는 용어가 너무 익숙하실 겁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제 '국가유산'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어떻게 보면 좀 경직될 듯한 용어와 그리고 그 청으로 바뀐 데 대해서 조금 의아해하시고 어떻게 불편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용어와 이것은 얼마든지 저희가 바꿔 나갈 것이고요. 문화재라는 잘못된, 62년 동안 사용된 재화의 개념 바로 이것은 이제 헤리티지 즉 유산 개념으로 바뀔 때가 됐고요.
저희들이 앞장서서 나갈 테니까 여러 국민들이 조금만 같이 협조해 주시고 호응해 주시면 더 나은 미래를 가치를 창출하는 국가유산청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 : 새롭게 출범한 국가유산청에 역할을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최응천 국가유산청장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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