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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 앵커 >

9월 마지막 금요일 – 9월 27일 뉴스 이노베이션 – 금요일에 보내 드리는 ‘수도권 순라군’ 순서입니다.

박관우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질문 1]

남서울의 대표사찰이자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 호압사에 모셔진 약사여래상이 서울시 문화유산자료인데, 이번에 ‘서울시 지정 문화유산’으로 승격됐군요.

[답변 1]

바로 승격된 것은 아니구요. 서울시가 이틀 전(前) 지난 25일 지정예고했습니다.  문화유산 지정예고제가 있습니다.

[인서트 1] 서울시의 김양균 문화유산연구팀장입니다. 

[금천구 시흥동 소재 ‘호압사의 석조 약사여래 좌상’은 조선 전기인 15세에서 1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조성된 여러 여래상과의 비교한 결과, 석조로 제작된 ‘선정인(禪定印) 약사여래상 도상(圖像 icon) 가운데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고려의 전통을 이은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어, 2천년 4월 10일 ‘서울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이후, 이번에 20년만에 ‘지정문화유산’으로 승격됐습니다.]

말씀한대로,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 ‘호암산’에 위치한 호압사 – 남서울을 대표하면서 금천구에서 유일한 전통사찰입니다. 

약사전에 모신 ‘석조 약사여래 좌상’이 ‘서울시 문화유산자료’에서 이번에 ‘서울시 지정 문화유산’으로 승격 예고됐습니다.

승격 예고되면 한 달간의 예고기간을 거쳐서, 서울시 국가유산위원회 심의절차가 진행됩니다.

통상 두 달 정도 걸린다고 볼 수 있는데, 다음달(11월) 말쯤 ‘호압사 석조 약사여래 좌상’이 서울시 지정 문화유산으로 승격될 것으로 보입니다.

▷선정인(禪定印, Dhyana)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 5인, 즉 ①선정인 ②항마촉지인 ③전법륜인 ④시무외인 ⑤천지인 중의 하나로 '삼마지인(三摩地印)'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결가부좌한 자세에서 왼쪽 손바닥을 위로 하여 단전 앞에 놓고 오른손 손바닥도 위로 하여 왼쪽 손바닥 위에 손가락 부분을 겹쳐 놓되 양쪽 엄지 손가락을 맞대는 모습이다.

[질문 2]

국가유산기본법을 보면, ‘유산(遺産)의 유형’으로 국가유산과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 등이 있습니다. 

호암산 호압사의 약사여래 좌상이 현재 문화유산자료에서 문화유산으로 승격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답변 2] 

국가유산기본법상 ‘유산의 유형’을 말씀하셨는데, 국가유산 정책의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문화유산법’에 정하고 있는데, ①국가 지정 문화유산과 ②시도 지정 문화유산, 그리고 ③문화유산자료 등이 있습니다.

먼저, ‘문화유산자료’는 시도지사가 지정합니다. 문화유산 중에서 향토문화 보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입니다.

또, 국가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 중에서 보존가치가 인정되는 것은 ‘시도 문화유산’으로 지정합니다.

국가유산의 체계라고 볼 수 있는데,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이후 일정 시간 경과 등 요건을 갖추면, 승격절차를 밟게 됩니다.

그러니까 ①문화유산 "자료"에서 ②시도 지정 "문화유산"으로, 나아가 국가가 지정하는 ③"보물"과 ④"국보" 등으로 ‘승격 지정되는 절차’가 있습니다.  

▷문화유산법상 지정 문화유산

*국가유산청장 지정 – 국보, 보물, 사적, 국가민속문화유산, 보호물, 보호구역 

*시도 지정 문화유산 – 문화유산자료, 시도 지정 문화유산 

[질문 3]

이번에 호압사 약사여래 좌상이 서울시 지정 문화유산으로 승격 지정 예고된데 이어서,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각황사 석조 관세음보살 좌상’이 ‘서울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죠. 

[답변 3] 

그렇습니다. 먼저, ‘호압사의 석조 약사여래 좌상’에 대한 문화유산자료 지정사유를 들어보겠습니다. 

고려의 전통을 이은 조선 전기의 불상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는 설명인데, 서울시의 김양균 문화유산연구팀장입니다.

[인서트 2] 

[은평구 불광동 산 42-1 소재 ‘삼각산 각황사의 석조 관세음보살좌상’이 이번에 서울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 예고됐습니다. 각황사 석조 관세음보살 좌상은 상호(相好)의 부드러운 조형감각과 함께 유려한 옷 주름 표현이 돋보이는 불보살상입니다. 이는 조선 후기에서 20세기로 이어져 내려온 불교존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고, 특히 조선 후기에서 20세기로 이어져 내려온 불교 조각의 전통을 이은 작품으로 평가됐습니다.]

불광동 각황사의 석조 관세음보살 좌상은 일제 강점기 양완호(梁玩虎 1869~1933) 불화장(佛畫匠)이 조성했습니다. 

1890년(조선 고종27년, 134년 前) ‘궁중 도화서 화원’으로 동참한 부산 출신의 화사(畵師), 화원(畫員), 금어(金魚) 등으로 불립니다만, 불화승(佛畫僧)입니다. 

[인서트 3] 김양균 문화유산연구팀장입니다. 

[특히, 작자로 알려진 양완호 스님이 남긴 불보상이 드물고 아주 적다(稀少)는 점에서 문화유산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됐습니다. 불화장(佛畵匠) 양완호 스님은 근대기 범어사 불화소에서 승려 장인들을 지도하며 부산을 중심으로, 경상남ㆍ북도에서 활동한 불상 조각가입니다. 근대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각황사 관세음보살상은 현존하는 양완호 스님이 조성한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주목되고 있습니다.]

▷ 각황사 = 1966년 삼매정수선원 / 창건주 의룡 스님(추정 1936~2022 입적. 세수75세) /직지사 강원 강주 

[질문 4]

양완호(梁玩虎) 불화장(佛畫匠)이 조성한 불보살상과 불화[佛畫, 탱화] 등이 전국 전통사찰에 모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국사, 통도사, 경주 기림사 등에도 양완호 불화장이 조성한 불화와 불보살상이 지금도 보존돼 있죠?

[답변 4]

양완호(梁玩虎 1869~1933) 불화장(佛畫匠)은 세수 64세의 일기를 보였습니다만, 10대부터 불화공부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양정욱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문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양완호 불화장은 30대 초반 부산 영도에서 당시 해운암 자리에 복천암을 짓고 불교공부와 참선에 매진했고, 금정산 범어사로 출가했습니다.

불화(佛畫) 49점과 불보살상 10점이 전하고 있는데, 

불화를 보면 불국사 신장도(1917년), 통도사 사명암의 지장도(1920년), 범어사 말사 인성암의 독성도(1928년), 경북 도리사의 신중도(1931년) 등이 있습니다.

불보살상으론 경주 기림사의 지장보살 좌상(1921년), 부산 영도 복천사의 석조 여래좌상(1922년), 울산 고석사의 지장보살 좌상(1919년), 포항 임허사의 지장보살상(1930년) 등이 있습니다. 

[질문 5]

서울시가 지난 23일 지정 예고한 유형문화유산 가운데 호압사와 각황사 불교문화재와 함께 

조선후기 제22대왕인 정조(재위 1776~1800)가 내렸던 ‘어사고풍(御射古風)’도 포함됐군요. 

어사고풍(御射古風)이 어떤 유물입니까?

[답변 5]

‘어사고풍(御射古風)’은 왕이 사례(射禮), 즉 활쏘기 대회 의식을 열어서, 신하들에게 선물(賜恩)을 주는 행사입니다.

고풍(古風) 중 ‘고(古)’를 보면, ‘옛날, 예전’도 있지만, ‘예스럽다 - 옛것과 같은 맛이나 멋이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풍(風)은 22가지의 뜻이 있는데, 바람은 물론 풍속-습속, 경관-경치, 기질-기세 등의 의미도 있습니다.

옛날 용어라 생소해서 찾아봤습니다만, 어사(御射)는 왕이 주최하는 활쏘기 대회이고, 고풍(古風)은 선물 주는 풍속입니다.

고풍(古風)이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보너스, 팁(tip)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현금과 음식 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명절이나 인사 때 행하고 있습니다만, 벼슬아치가 새로 부임해도 고풍(古風), 즉 옛풍습에 따라 금품을 나눴다고 전합니다. 

중앙 보다는 지방 외관직 인사에서 두드러졌고, 직접 주기도 하지만, 지방 고을의 경저리(京邸吏)가 대신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 서울과 지방의 연락사무를 맡았던 관리가 증서를 받고, 선불로 먼저 나눠 준 뒤에 원금에 이자를 붙여서 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질문 6]

그러니가, ‘어사고풍(御射古風)’은 주로 조선시대 관료인사가 났을 때, 금품이나 선물 등을 주고받은 풍속이라고 이해하면 되겠군요.

요즘은 청탁금지법, 김영란법 등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어사고풍’은 고문서(古文書)죠?

[답변 6]

그렇습니다. 조선후기 제22대 왕 정조(正祖 재위: 1776~1800) 때 제작된 고문서입니다. 

이번에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는데, 조선 후기 정조(1752~1800) 때 ‘임금이 주최한 활쏘기 대회기록’입니다. 

정조는 사례(射禮), 즉 활쏘기 대회를 수시로 열었습니다. 어사고풍 고문서가 제작된 1792년(8/10 프랑스혁명) 총56차례의 어사례를 열었습니다.

56차례 활쏘기 대회중 40번째 해당하는 – 지금으로부터 232년 전(前) 기록이고, 그동안 여러 문헌에서 확실하게 고증된 고문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임금 주최 활쏘기 대회 문서’ - ‘1792년 고풍과 어전궁술(御前弓術) 기록책자’입니다. 

조선 후기의 정치사, 경제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실물자료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질문 7]

이번에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된 유산 가운데 조선시대 달항아리, 그리고 평안북도 구성군수의 행적을 적은 병풍도 포함됐군요.

[답변 7]

조선시대 달항아리는 백자입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데, 전체 명칭을 보면 ‘백자 연령군 겻쥬방명 달항아리’입니다.

다소 복잡한데, 명문에 등장하는 연령군(延齡君 1699~1719)은 숙종의 막내 아들이자 영조의 이복동생입니다. 

21세 나이로 요절했는데, 1703년 4살 때 대군으로 봉해지고, 8살 때인 1708년 출궁합니다. 

이 백자 달항아리는 대군 임명부터 출궁까지 6년간 연령군 처소에서 사용될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질문 8]

숙종이 연령군을 4살 때 대군으로 봉했습니다만, 21살에 요절했다는 기록을 보니까 사연이 많은 숙종의 아들로 보여집니다. 

조선시대 예법(禮法)을 보면, 대군은 6살 이후 봉한다는 기록인데, 어떻습니까?

[답변 8]

숙종(1661~1720) 때는 조선왕조에서 당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는데, 다행히 대외적인 전쟁은 없어서 점차 안정기를 맞았던 시기입니다.

말씀한대로, 조선 예법엔 6살 이후 대군(大君)으로 봉작하는데, 연령군의 생모인 명빈박씨가 사망하면서, 4살 때 주상자(主喪者) 자격으로, 대군에 봉해졌습니다.

당시 반대했던 대간들은 모두 파직됐는데, 연령군은 8살에 혼인했지만 천연두를 앓는 등 병세가 악화되면서 21살에 요절했습니다.

숙종이 특별히 사랑했다는 실록의 기록이고, 직접 제문과 묘지문을 짓었습니다.

또 배다른 형제입니다만, 연잉군과 각별했는데 , 연잉군이 후일에 영조[1694년(숙종 20)~1776년(영조 52) 82세]로 즉위한 이후 치제(致祭) - 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조치했다는 기록입니다. 

[질문 9]

평안북도 구성군수 ‘오일영의 행적을 적은 병풍’이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유는 어떻습니까?

[답변 9]

송덕병풍인데, 조선 말기 오일영이 평안북도 구성군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그의 행적을 칭송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제작한 병풍입니다.

현재도 쉽게 접할 수 있는 19세기 말 평안도 지역 지방관의 송덕풍습(頌德風習)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보입니다. 

지방관리의 공덕을 기리며 감사의 표시로 바친 일산(日傘) 모양의 만인산(萬人傘]이나 만인첩(萬人帖)과는 달리 ‘병풍형태’로 만든 유일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크로징]

네, 지금까지 박관우 기자와 함께 호압사 석조 약사여래 좌상의 서울시 문화유산 승격 예고 등에 대해 알아봤습니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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